2023. 12. 6. 00:50ㆍ지식
빛은 입자이기도 하며 파동이기도 합니다. 양자역학에서 볼 수 있는 양자의 이상한 이중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빛도 이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중슬릿 실험으로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두 세기 전에 과학자들은 이런 이상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빛이 파동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빛에 대한 가상의 매질을 ‘에테르(aether)’라고 칭했습니다. 이들의 생각으로는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은 바다라는 매질이 있기 때문이고, 빛도 당연히 파동에 의한 것이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에테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에테르를 발견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빛은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 대상으로부터도 항상 같은 속도로 보인다’는 것은 에테르와 함께 빛에 대한 가설의 숙제가 되어 왔습니다. 운동은 상대적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는데 빛은 왜 예외가 되는 것일까요? 절대로 일정하다는 것이 말이 될까요? 하지만 아인슈타인 조차도 빛은 절대적인 운동을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말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80Km로 달린다고 쳐보면 반대편에서 같은 속도로 달려오는 차를 봤을 때 160Km로 보일 것입니다. 이것을 속도합성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즉, 상대적인 속도가 고전물리학에서의 뉴톤역학에서는 기본인 것입니다. 하지만 빛은 이런 속도합성의 법칙의 예외가 되었고, 뉴톤역학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의문들을 광전효과를 설명하며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지닌다고 가정했습니다. 빛이 입자라면 매질은 필요가 없으며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빛의 절대속도를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라는 성질이라 밝힙니다. 속도는 공간과 시간이 없으면 성립되지 못합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서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라 정의 합니다. 아마도 그렇게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시간의 속도는 같다고 인식합니다. 상대와 절대라는 개념이 있지만 시간은 절대에 속합니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 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0세기까지 사람들은 생각하고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간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아인슈타인은 돌을 던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빛은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 대상으로부터도 항상 같은 속도로 보인다’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시간과 공간, 특히 시간에 대한 인식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는 혁신적인 논증을 펼친 것입니다. 속도라는 것은 얼마만큼의 시간 안에 공간을 얼마나 멀리 움직이느냐로 결정됩니다. 즉, 속도는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식을 조사하기 전에 먼저 부모의 특성을 철저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아인슈타인은 착안합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동시각의 상대성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동시에 어떤 일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 눈에는 시간차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기차의 한 칸에 사람이 있고, 앞과 뒤쪽으로 동시에 같은 힘과 속도로 공을 던진다고 쳐보면, 기차 안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공이 같은 속도로 같은 거리를 날았다는 것을 관측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기차 밖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기차의 앞쪽으로 공을 던지면 기차가 앞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공이 더 멀리 날아간 것처럼 보여지고, 뒤로 공을 던지면 기차의 벽면이 다가옴으로 더 짧은 거리를 날아갔다고 관측하게 될 것입니다.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던진 공은 공의 속도에 기차의 속도가 합쳐져서 보여지고, 뒤로 던진 공은 공의 속도에서 기차의 속도를 뺀 것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속도합성의 법칙의 간단한 예입니다. 밖에서 관찰한 사람은 동시에 앞뒤로 던진 공의 속도와 날아간 거리가 다르게 느껴지더라도 결과적으로 각각 공이 벽면에 동시에 부딪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은 한쪽은 더 빠르고 더 멀리, 한쪽은 더 느리고 더 짧게 보여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결과에 차이는 없게 됩니다.
그러면 공을 빛으로 바꾸어 같은 상황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기차의 중앙에서 불을 켜서 양쪽 앞과 뒤의 벽면에 도달하는 시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차 안에서 관찰하는 사람은 앞에서와 같이 동시에 빛이 도달했다고 관측을 하게 됩니다.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은 뒷면에 먼저 빛이 도달하고 그 다음 앞면에 빛이 도달하는 것을 관측하게 됩니다. 물론 빛은 너무도 빠르므로 그 차이를 느낄 수는 없을 것이지만 사고실험에서는 그렇게 결론이 나옵니다. 이런 것이 동시각의 상대성입니다. 왜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은 공의 경우는 동시에 벽면에 도달하는 것을 관측할 수 있지만, 빛의 경우는 다른 타이밍에 도달하는 것처럼 관측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빛은 속도합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법칙이 적용된다면 결과는 공과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빛의 속도는 관찰자가 움직이고 있어도 정지해 있어도 항상 일정한 속도로 보이게 됩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수 많은 실험을 거친 결과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설령 빛을 발산하는 광원의 속도가 바뀐다고 하여도 결과는 같을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한쪽의 의견이 옳은 것이라면 다른 한쪽의 의견은 틀린 것이라고 편파적이 되기 쉬운데, 위의 예에서도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하나는 틀렸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는 척도는 모두에게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척도가 되는 것이 틀린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그 발상의 틀을 깨고 ‘시간은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보입니다. 시간은 조건에 따라서 늘어나기도 축소되기도 하며,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동시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말하려는 것은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각각의 조건에서 다양한 관찰자가 느낄 수 있는 시간의 차는 모두 다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은 없으며, 조건에 따른 상대적인 시간만이 존재한다고 상정합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은 정지해 있느냐 움직이고 있느냐입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좀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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