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 세상을 살면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에게 비난 받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2024. 2. 3. 00:03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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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비난은 사라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남을 욕하거나 비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비난이나 비평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상황이나 상대에 대해 무지할 경우가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는 척을 하거나,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는 있어도 진짜로 그 사건이나 대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인지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그릇의 크기에 따라 뭐라도 떠들고 싶을 뿐이다. 어떤 사건이나 대상의 단편적인 면 만을 보고 상대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또한 자칫 좋은 면을 노칠 수 있다. 이 같은 일은 바보 같은 일이다. 자신 또한 누군가의 눈에는 모자르고 비난 받을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아 비난 받을 행동을 단 한가지도 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단언컨대 없다. 때로는 선행을 하는 사람도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한다. 욕설과 비방, 비난은 단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수준이 매우 낮고, 입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여기서 기분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본인 또한 그런 수준 낮고 입체적인 사고가 부족한 사람에 속한다. 그래서 더욱 그런 자신을 반성해 보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신을 바르게 평가해 두는 것이 먼저이고, 섣불리 남을 비난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들이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옷차림이나 외형적인 것으로 놀릴 수는 있어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오랜 시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진정한 실체’를 이해 하고 있는 사람은, , 내면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쉽게 비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비난을 받게 되었을 때 정신적인 대미지는 전자가 훨씬 클 것이다.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은 단편적인 것 만을 보았기 때문에 상관이 없지만, 입체적인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 비난을 하는 것은 충격이 될 수 있다. 물론 세상에는 모두를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나, 잘못된 신념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이 큰 사람은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택한 길이다.

 

세상을 살면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에게 비난 받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질투에 눈이 멀어 남을 비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일정 수 존재한다. 그들과 논쟁을 하며 싸울 필요는 없다. 이미 결정되어진 비난은 아무리 올바른 논리로도 바꿀 수 없다. 싸우면 싸우는 만큼 자신만이 피폐해져 간다. 자신이 비난을 받는다면 상대가 자신을 질투하는 것은 아닌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잘난 부분을 가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이다. 그것은 바보가 하는 행동보다 한 수 더한 멍청한 선택이다. 일일이 남의 비난에 마음을 둘 필요는 없다. 사람이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이다.

세상 사람들의 사고는 모두 단일한 것이 아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 모두 다르고, 선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과 악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다르다. 같은 사건이나 사고에도 이것은 양분된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던 비난은 사라지지 않는다.

많은 비난과 비평을 받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말이다. 방구석에서 혼자서 틀어박혀 사는 사람에 비해, 연예인이나 정치인, 사업가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비난을 많이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여기서 다시 기회라는 이벤트가 등장하는데, 비난을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비난 받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고통 받는 정치를 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비난 받는 연예인은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고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경우 전자의 정치인이 사람들의 민심을 살피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국가를 위하는 자세로 변해간다면 그 비난은 찬사로 바뀔 것이고, 후자의 연예인이 정신을 차려 선행을 보이고 귀감이 되는 행동을 이어간다면 다시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비난을 받는 다는 것은 무관심에 비하면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위사람에게 받는 비난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비난에 그리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스스로 바꿔야 할 부분과 유지해야 할 부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바르게 평가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주위의 비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비난도 결국은 이익과 불이익의 관계, 선과 악의 관계, 질투와 무관심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그 기준이 너무도 갈래가 많아서 어떤 비난을 따라야 하는지는 남이 정해줄 수 없다.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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