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 00:56ㆍ카테고리 없음
생의 마지막에 꿈이 변한다.
사람이 죽을 때가 다가오면 인체에 뭔가 변화가 느껴진다고 한다. 급성질환이나 사고사 또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남은 것은 자연사 정도일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그 변화 중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들었는데, 이 둘 중 죽음을 감지하는 감각은 정신적인 것에서 더 많이 다가온다고 했다.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옛 말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사람이 명이 다해가면 우선 평소와는 다른 꿈을 꾸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꿈이 더 현실적이 되고 그 색채가 더 선명해지는 모양이다. 마치 꿈에 동화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횟수가 점차 늘어간다면 그것이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 전의 전조일 수 있다. 보통 일상적으로 꿈을 꿀 때에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목소리, 표정이 흐리멍텅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인생의 막바지에서는 체력도 쇠퇴하고 정신력도 많이 약해져 있음에도 꿈만큼은 몇 배나 더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선명하고 그 동작이나 의사가 매우 강하게 이미지 되며, 이상하게 평소에는 잘 잊어버리던 꿈들이 잠에서 깨서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기억이 나게 되곤 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의 몇 몇이 공통적인 진술을 하기도 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꿈 속에서 편안하고 기분 좋은 일들이 대체로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친하게 지네던 사람들이 방문을 하고 먼저 저세상으로 간 부모나 형제, 사랑하던 사람들과 재회하는 등 행복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회상이나 연출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저세상이 두려운 곳이 아니니 너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암시를 주는 것 같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의 몸이 스스로를 위안하고 두려움의 완충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환각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진술을 했으며 인생의 마지막이 되어 갈 때 성격이 괴팍한 사람도 갑자기 선량해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주마등이 지나가듯 자신의 일생이 그려지고 후회스런 것, 원망스러운 것, 서러운 것, 두려운 것, 못다한 것과 같은 부정적이고 욕심에 가득 찬 마음이 대체로 사라지고, 밝은 것, 사랑스러운 것, 사랑했던 것, 좋았던 일, 행복했던 순간이 꿈 속을 점차 점령해 간다. 배우자를 사랑했다면 먼저 떠난 아내나 남편이 등장하기도 하고, 부모가 그리웠다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인자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노인들 중 꿈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다. 늙어 죽음의 문턱이 다가오면 약 1~2년에 걸쳐 잠을 자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며 약 6개월 전부터는 하루 15시간 이상 잠만 자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점차 꿈과 현실이 교대를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꿈 속의 일들을 주위사람에게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추억을 이야기 하듯 꿈 속의 일들이 구체적이고 현실처럼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기뻤는지도 빼놓지 않는다.
노년기가 되면 인생에서 많은 일들이 이미 일어난 상태에 놓인다. 자식들은 분가를 하고 배우자가 먼저 떠났을 경우도 있다. 홀로 남겨지게 되면 그 외로움은 정말로 암담하다. 자식이 어릴 때에 함께하다 성장을 해 가며 자립을 시키게 되었을 때의 허전함과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외로움은 인생에서 심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쓸쓸함은 명 마저 단축시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배우자가 곁에 있을 때 죽음을 맞이하는 쪽이 그래도 조금 더 행복한 일생이다. 꿈 속에서 밝은 빛을 따라 천사들이 내려오거나 지인이 등장해 함께 가자고 하는 것, 황천강을 건너는 것, 사람에 따라 마지막에 보게 되는 꿈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의식의 ‘마지막 지점’이 어떤 형식으로 든 표현된다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게 되는 어떤 ‘정서’를 만들려는 것처럼 말이다.
생의 마지막 꿈에서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현세에서 상대를 어떤 식으로 대했던 의도한 것이던 무의식적인 것이던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상대와 함께 하던 가장 ‘적절한’ 형태로 바뀌게 되곤 한다.
상대가 부모라면 자신은 아이가 되어있을 것이고, 상대가 연인이라면 젊은 시절의 자신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 순간 상대를 가장 사랑하던 마음이 있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몸은 쇠약해지고 생기는 사라져가도 정신의 행복도나 윤택함은 더 올라간 듯 느껴진다.
꿈 속에서 상대에게 못다한 말을 전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려는 듯 짐을 싸고 있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한 어린아이는 죽기 며칠 전 꿈 속에서 키우던 애견이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인생은 선하고 행복하게 살면 마지막 순간에 아마도 더 많은 기분 좋은 꿈을 꾸게 되는 것은 아닐까? 주위에 돈 많고 잘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은 것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을 보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아니면 그들이 떠난 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추한 행동이 떠난 사람을 동정하게 만드는 것일까? 내가 보아온 죽음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차라리 가진 것 없어도 그 사람이 떠난 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많이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해주며 형제들끼리 우애로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였었다고 말하고 싶다.
악한 사람의 말년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불교의 관불삼매경을 보자면 악하게 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안도할 수 있는 것인지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