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29. 00:50ㆍ카테고리 없음
복수의 마음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그 존재에게 원망, 원한이 강할 때 생겨난다. 복수와 보복은 원한이나 증오의 기운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기운들은 당신을 불행으로 이끌 뿐이다.
#복수는 돌고 돈다.
무언가를 빼앗기거나, 괴롭힘을 당하거나, 보기 좋게 이용당하거나, 원한이 생길 일을 당했을 때 사람은 복수를 다짐하고 보복을 하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옛날 이야기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한 주인공이 십 수년을 복수의 칼을 갈다 결국 원수를 갚는다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성서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앙갚음의 구절이 있듯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게 되는 성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들거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중동국가 및 이스라엘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명분은 바로 ‘복수’이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것이 복수이어서 한 번 시작되면 계속해서 그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반복하게 된다. 복수로 인한 피해자는 단지 한 명이 아닐 수 있으며 그 굴레는 기하 급수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 즉, 복수, 보복은 불행을 만들어 내는 법칙이다. 복수라는 행위 또한 인과의 법칙에 따라 인생에 적용된다. 업이 되는 것이다.
옛날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복수를 끝내고 정말로 행복하게 일생을 보냈을까? 모르긴 몰라도 남은 인생도 괴로움이 더 많았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그 사람의 운명을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자인자과(自因自果)하다고 한다. 선행을 행하면 행복한 운명이 만들어지고, 악함을 행하면 고통스러운 운명이 만들어지며, 자신이 뿌린 씨앗은 스스로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것이다. 우연처럼 생각되는 것들도 결국 인생을 살다 보면 이 말처럼 딱 들어맞는 말이 없다. 이 인과의 도리를 바탕으로 보자면, 상대가 나에게 못된 짓을 했다고 해서 복수를 위해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면 그것이 악행으로 판정되어 자신 또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운명을 만들어 가게 된다.
법구경(法句經)에서는 복수는 복수를 함으로써 끝이 나는 것이 아니며, 인내에 의해서 복수는 끝을 맺는다는 구절이 있다. 이것이 진실일지 모른다. 상대에 대한 복수의 감정이 든다면 다시 인과응보의 법칙을 떠올려 보자. 상대가 나에게 잘못을 하고 상처를 입혔다면 상대는 이미 악행을 한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상대의 운명은 이미 불행 쪽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복수를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다시 염두에 둘 것이 하나 있는데 자인자과이다. 상대에게 복수를 할 필요도 없지만, 상대를 증오하고 미워하며 파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당장은 잊을 수 없어도 시간에 의해 희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니 이것에 인내가 필요하게 된다. 사라질 것 같지 않아도 차차 옅어져 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생각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스스로가 선택하는 미래라 할 수 있다. 보기 싫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복수는 스스로를 더욱 소중히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삶으로써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 때쯤이면 싫어하던 상대의 존재 따위는 이미 안중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법구경에서는 악행을 즐기는 사람을 피하고, 진정으로 행복함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해야 한다고 한다. 행복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결국은 행복해지는 법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소유한 것이 많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 이외의 것은 사실 상 없는 것과 같다. 돈과 건물, 토지, 물건의 소유라는 개념은 사회의 체제가 결정하는 것이지 진짜 영원한 자신의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손바닥 뒤집듯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그 때에도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소유한 것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이 유일하다. 행복의 기준은 그래서 자신의 건강과 평온한 마음에 초점을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