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타이슨의 전설

2024. 2. 2. 09:21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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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12일 프로 복싱계의 전설이던 마이크 타이슨이 매트에 주저 앉았다. 대전 상대는 세계 챔피온도 장래가 유망시되는 선수도 아니었다. 시합 후에 타이슨은 웃으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흐르는 땀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흐르는 땀 속에서 한줄기 눈물이 보였다. 왜인지 그것은 한 사람의 팬으로서 눈물임이 분명해 보였다. 복싱계에서 20여년을 풍미했던 영웅은 그렇게 케빈 맥브라이드와의 시합을 끝으로 은퇴를 하게된다.



*스트리트 파이터

어린 시절 마이크 타이슨은 슬럼가에서 불량 스트리트 파이터로 생활했다. 그런 생활을 10세 이전부터 계속하며 그를 기다리는 미래는 분명 길거리에서 죽거나 소년원을 들락거리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현실은 후자가 되었다. 강도행위와 폭력 등으로 타이슨은 12세에 38번 체포되었고, 13세에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누가 보아도 망가질대로 망가진 최악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 이 사건이 타이슨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그 운명은 소년원에서 복싱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이 때에 다마토는 이미 두 명의 세계 챔피온을 양성해 내었었고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인물이었다. 다마토는 타이슨을 본 순간 그의 무서운 잠재력과 자질을 알아본 것일 것이다.

다마토는 타이슨의 법적 후원자가 되어 복싱 이외에도 인생에 전반에 걸쳐서 교육을 시켰다. 2세에 아버지가 집을 떠나 혹독한 삶을 살던 타이슨에게는 그 무엇보다 필요하던 것일지도 몰랐다. 다마토의 진심을 안 것인지, 사람을 의심할 줄만 알았던 타이슨도 그에게 만은 마음을 열었고, 그의 가르침 만은 따랐다고 한다.

타이슨의 화이트 장면을 보면 복싱의 기본기를 얼마나 철저히 연습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완벽하고 수 많은 연습과 실전에 의해 뇌가 아닌 근육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말이다. 천부적인 자질과 완벽한 스승에 의한 기본기가 합쳐져 프로 복싱계에 새로운 스타가 등장할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광의 시대

1985년 타이슨은 18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한다. 키는 178센치로 헤비급 복서로서는 작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그와 경기를 치룬 상대들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맷집에 혀를 내두른다. 데뷔한 년에 그의 전적은 15전 전승 15KO승이었다. 그것도 11전은 1라운드 KO로 누구든 한대 맞으면 못 일어나는 것이었다. 마치 인간이 아닌 짐승이 날뛰는 듯한 파괴력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역사상 최연소 세계 헤비급 챔피온에 오르며, 또 그 다음 해에는 복싱 헤비급 역사상 처음으로 WBC, WBA, IBF에서 모두 세계 챔피온을 따낸다. 이 때에는 이미 세계가 마이크 타이슨이란 이름으로 술렁거렸다.

타이슨의 경기를 보러오는 사람들은 누가 이길지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타이슨이 상대를 어떻게 얼마나 빨리 쓰러뜨릴 것인가를 상상하며 흥분했다. 가드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통괘한 파괴력은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마치 헐크가 토르의 망치를 휘두르는 것 같이 빠르고 육중했던 것이다. 어떤 선수들은 그 파괴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경기 내내 그에게 다가서지 않고 주위를 맴돌기도 했다.

타이슨은 프로 통산 585044KO 62무효라는 성적을 남겼다. 그는 데뷔 이후 19연속 KO승을 거두었고 37연승을 한다. 한때 그의 몸값은 한 경기당 3500만달러에 육박했다.



*몰락의 길

많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너무 이른 성공은 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젊은 나이에 정점의 극에 다다랐던 마이크 타이슨에게 목표는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방어기록을 세우다 무패로 은퇴하는 것이다. 헤비급이 아니었다면 5, 6계급의 제패도 꿈꿀 수 있었겠지만, 복싱에서 헤비급보다 더 높은 급은 없었던 것이다. 작은 체급에서 체중을 늘려 올라가는 경우는 있어도 헤비급에서 내려가면서 이겨도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이슨의 경기는 현상유지를 위한 방어전 뿐이었다. 노력을 할 동기로서는 한계가 온 것이다. 그 때 나이 24세로 혈기왕성하던 타이슨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길 것이라 사람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그 후로 무언가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가장 큰 사건은 자신의 복싱 스승이자 인생의 스승이었던 커스 다마토의 죽음이다. 타이슨은 몸과 마음의 버팀목을 잃고 인생의 내리막으로 향한다. 1990211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WBC, WBA, IBF 헤비급 통합타이틀 전에서 당시 무명에 가까왔던 제임스 더글러스를 맞아 10회에 KO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게 되며 37연속 무패 신화는 38회에서 꺽이고 만다. 그 후에는 부녀자 폭행으로 체포되고 또한 홀리필드 전에서 패배한다.

그리고 다시 치뤄진 홀리필드와의 리턴매치에서 세상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 TV생중계를 통해 일어나고 만다. 경기중 홀리필드의 잦은 버팅과 니킥 등에 짜증이난 타이슨이 갑자기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은 것이다. 생중계에서 귀를 물어뜯어 뱉어 버리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만 아연실색하며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슨은 이 경기에서 패배함과 동시에 인생의 몰락이 시작된다.

이 사건 직후 미국에서는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라는 이름의 쵸콜릿이 나와 불티나 듯 팔렸다고 한다. 이 초콜릿은 타이슨의 이빨자국까지 선명하게 재현하며 타이슨의 만행을 기념(?)했다.

타이슨은 스승인 다마토와 사별하고 10년간 사고뭉치로 살았다. 마치 옛날의 슬럼가 스트리트 파이터로 돌아 간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관중들은 야성의 상징이던 마이크 타이슨이 돌아 오길 바랬다. 그가 몇 번이나 졌음에도 관중들은 오히려 언젠가 다시 부활할 것임을 기대했다. 또한 그만큼의 팬층이 있는 만큼 영업의 입장에서는 그를 써먹어야 했던 것이다. 흥행의 보증수표를 간단히 버리기는 아까운 법인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날인 2005612일은 오고야 만다.

케빈 맥브라이드와의 시합에서 어이없이 패배한 타이슨의 모습은 잘 나가던 야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때의 상태를 복싱 관계자는 말한다.

“타이슨은 스승이 타계하고부터 어깨와 팔의 근육이 확연하게 줄었다. “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시간들

은퇴를 한 타이슨은 아내를 폭행하면서 이혼을 하게된다. 이 때에 천문학적인 금액의 위자료를 지불하며, 그 후에도 자산관리에 실패해 2003년 파산신고를 하게 된다.

20년간 벌어들인 파이트 머니 4000억이 한푼도 남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내에게 날린 바디 블로우가 평생의 최고의 펀치였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의 자신감은 여전하며 한결같이 비둘기를 사랑하는 여린 감정의 소유자이다. 타이슨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재정적으로도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살아 있어서 각종 버라이어티와 영화, 파티 등에 등장하며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2009년과 2011년에 영화 ‘행오버’에 출연 했으며, 2016년에는 ‘엽문3’에도 나왔다. 타이슨은 새로운 가정을 꾸렸으며 아들과 딸을 사랑한다. 타이슨은 여전히 부유한 저택에서 살고 있으며 호랑이 한 마리와 비둘기 200마리를 키우고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홀리필드와는 사건 이후 화해 했다고 한다.



타이슨은 복싱 역사에서 가장 강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가장 화제가 된 선수인 것 만은 확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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